오늘 볼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취소하는 걸 깜빡해서 결국 충무로로 터벅터벅 갔지. 고민한 이유는 한동안 쉬는 날 없이 현생을 살았더니 뭔가 볼 기분이 아니었고, 또 한동안 퍼포머 부상 소식 등으로 시끌시끌해서 공연 컨디션이 괜찮으려나 걱정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공연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스윙들인지 전에 못본 분들을 많이 봐서 나름 레어 회차였던 거 같기도. 

 

하루 전까지 볼말을 못 정해서 뭘 위주로 보자, 라는 굵직한 방향성은 특별히 없었었다. 다만 저번 관극을 토대로 1. 입장할 때 엘리베이터 타기 2. 3층 위주로 둘러보기 3. 그동안 못 본 장면 위주로 보기, 정도로 정리했달까. 매번 마음이 앞서서 굿 이브닝 멘트 끝나자마자 부랴부랴 뛰어들어갔는데, 엘베로 올라오니 기분이 색달랐다. 내가 갈 위치를 호텔 직원이 정해주는 방식도 새로웠고. 마지막까지 남아있으려고 했는데 갑자기 엘베 언니가 나를 찐하게 보더니(프로포즈 아니냐) 내 손 잡으면서(언니 손이 너무 부드러웠다 헠헠) "전 당신이 마음에 들어요..." 하면서 슥 밀어서 혼자 내렸다. 생각해보면 나를 민 게 아니라 당겼을 텐데 왜 밀었다고 느꼈는지 모르겠네. 문 닫히고 둘러보니까 2층이더라. 내리자마자 왼쪽에 사제 동상 보고 혼자 놀라서 소리지를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렇게 된 김에 2층을 본거지로 삼고 둘러볼까? 잠시 고민했는데, 원래 생각해둔대로 한 층 더 올라갔다.

 

그 때는 무도회 음악이 나오고 있었다. 오늘 19시 입장이었고, 레드 2 카드로 들어왔더니 이 시간대. 이상하게 무도회 장면은 노래만 들어도 눈물이 날 거 같다. 무도회에서 맥더프 부인의 혼란함에 동화되어서 그런가? 그래서 꽤 화려한 장면인데도 피하고 싶어. 아무튼. 3층에 왔더니 한창 사탕가게 일대일 진행 중이었다. 그동안 3층에는 오랜 시간 머물지 않아서 이번에 처음으로 캔디뽀이들을 봤는데 장난꾸러기 요정들 같고 귀엽더라. 이 어둡고 축축하고 피와 음모로 가득한 이야기 속에서 거의 유일하게 햇살 같은 장면인듯.

 

캔디뽀이 일대일(엄밀히 따지면 1:2,,?) 따라다니면서 구경하다가 우연히 헤카테랑 마주쳐서 헤카테를 홀린듯이 뒤쫓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초반에는 헤카테 위주로 봤다. 헤카테는 생각보다 머무는 공간이 제한적인 느낌이었다. 헬 데어랑 드라이플라워 공간이랑(약초방?) 헤카테 방이랑 갤로우그린 거리 정도. 그리고 맨덜리 바도 한 번 들르더라. 속으로 어디까지 내려가는 거에요? 중얼댔는데 ㄹㅇ로 0층까지 내려가더라곸ㅋㅋㅋ 가서 위엄있게 노래 한 곡 뽐내시고 다시 꿈속으로 복귀하심. 노래 끝나고 바 직원들과도 주고받는 장면이 있어서 재밌었다. 그야말로 꿈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지는 느낌. 왜 맨덜리 바와 헬 데어의 구조가 비슷했는지 궁금했는데 오늘 동선으로 약간의 의문이 해소되었다.

 

본 장면을 또 보는 것도 의외로 좋은 경험이었다. 특히 헬 데어 EDM 씬의 경우, 한 번은 위층에서 내려다봤고 또 한 번은 무대 쪽에서 올려다봤는데 안 보이던 부분이 있었다. EDM 끝나고 섹시위치 독무 때 1층에 집사 등장해서 소품 갖다 두는 것도 처음 봤다. 또, 어쩌다 보니 아그네스를(그동안 아가씨 혹은 이히라고 칭했는데 흠) 계속 마주쳐서 같은 장면을 두 번 봤는데, 울다 지쳐 잠든 장면에서 재단사가 두 번째 루프 때는 옷장으로 등장했는데 세 번째 때는 문 열고 들어오더라. 매우 중요한 부분은 아니지만, 같은 장면도 루프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는 듯해서 흥미로웠다.

 

두번째 루프 중반까지 헤카테 따라다니다가 (일대일 방처럼 관람이 제한되는 부분을 제외하고) 주요 장면은 다 봐서, 이후부터는 정처 없이 돌아다녔다. 레베카랑 맥베스 부인 키스하는 장면이랑, 바에서 카드 치는 장면은 한 번 더 보고 싶어서 일부러 찾아갔고. 사실 굵직한 장면은 스쳐가면서라도 다 본 느낌이라 이제 슬립노모어 자체를 그만 봐도 되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는 그정도로 오늘 관극이 만족스러웠다는 소리이기도 함. 물론, 당연히, 여전히 전체의 1/10도 못 봤겠지만 어차피 전부 다 볼 수 없는 공연이니. 디테일에 집착하기 시작하면 19억씩 태우다가 빈털터리 거지 되는 건 한순간이리라ㅋㅋㅋㅋ 앞으로 몇 년은 할 테니 이제 몇 달에 한 번 씩 잊을만하면 한 번 보면 될 거 같다. (<-이러고 오늘 10월 티팅 잡은 사람)

 

도전 과제처럼 일대일 동선 맞춰서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있더라고. 물론 일대일 재밌긴 해~ 난 그런 이벤트에 크게 의미를 두는 성향이 아니라서, 걸리면 좋고 안 되면 어쩔 수 없다는 편인데 오늘따라 희한하게 일대일을 계속 피해갔다. 한 다섯 번 연달아 내 바로 옆 사람이 걸리는 거 있지. 한 번은 장면 끝나고 딱 둘이 남았는데 나 말고 다른 분 데리고 방에 들어가서 혼자 덩그러니 솜씻너 된 기분이었다 허허허허. 그러고나니까 독이 바짝 올라서 일부러 두 번째 루프 때는 뭉개고 있었는데 또 또 지목 안되는 거 보고 오늘은 날이 아닌가 깔끔하게 포기했다ㅋㅋㅋㅋ 역시 각잡고 하려면 본새가 안나는 거 같다. 저번처럼 우연히 얻어걸려야 기분도 더 좋고.

 

던컨 죽어서 장례식 치르고 말콤이 너갱이 나가서 한참동안 계단을 뛰어올라가는데, 여기 따라가다가 놓치고 이때부터는 목적 없이 정처 없이 돌아다녔다. 빠르게 계단 오르기는 건 자신있는데 내 앞 사람이 계단 헛디디고 넘어질 뻔해서 뒤로 줄줄이 못올라감. 끝까지 따라붙은 사람 있으려나? 그래서 좀 돌아다니다가 5층 올라가서 오두막이랑 숲 둘러보다가 우연히 간호사즈를 만났다. 오늘은 두명 다 전에 본 분이 아니어서 신기했음. 한 분은 외국인이셨고. 언덕 올라가서 6층에 갔다가 병원 욕조 정리하는 거 보고(소품 정리하는 것도 안무처럼 표현해서 재밌었다) 2층 발코니로 내려와서 마지막 만찬씬 보고 마무리.

 

다음에 볼 때는 서브 캐릭터들 행동을 더 보고 싶다. 일단 궁금한 건 말콤이랑 포터. 마지막에 말콤 놓친 게 너무 아쉬워서 다음에는 리트해보는 걸로. 포터는 진짜 외곽 인물인데 이상하게 눈에 밟힌달까. 궁금한 사람이야. 사실 우선순위로 따지자면 아직까지 멕베스 부부를 진득하게 따라다닌 적이 없는데(자첫때 맥베스 부인 따라다니다 인파에 밀려서 낙오된 이후로 엄두가 안 남) 언젠가 사람이 좀 빠진다면(대체 언제) 처음부터 끝까지 봐보고 싶다. 아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19시 입장해야 하는 거 같다. 15분 차이인데 체감 훨씬 길게 느껴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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