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11일 오후 7시 30분 서계동 옛 국립극단 일대
작 나수민 허선혜 연출 윤혜진
출연 공지수 나윤희 라소영 박 현 장석환 장요훈 정다함 황규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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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되면 이머시브에 내 본체를 잠식당한 게 아닐까 싶은데 허허허. 원래대로면 관대 맞춰서 14일 공연 예매해뒀는데, 9월 초에 이르러서 갑자기 여러 일정이 전부 그날 겹치는 바람에 예매 취소 위기에 처해있었다. 그 때 쯤에는 이미 전 회차 매진된 상황이라, 이를 어쩌나 발동동 구르고 있었는데 다행히 취소표를 잡아서 첫공으로 보고 왔다! 관대 못본 건 아쉽지만 그래도 본 게 어디냐~ 이머시브를 내세운 점도 흥미로웠지만 나름 국립극단 제작 공연을, 특히나 국립극단의 청소년극을 열심히 챙겨보던 나였기에, 여러 이유로든 꼭 보고 싶은 공연이었거든.
10년도 훨씬 더 전부터 이머시브를 표방한 극을 챙겨보곤 했는데, 이딴 게 이머시브? 하며 번번이 실망했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기대 없이 왔는데 웬걸, 기대가 없어서 평이 좀 후하게 나가나? 섬X희곡X집은 최소한 이머시브의 형식에 부합하는 공연이었다. 게다가 한동안 잊고 있었던 국립극단 특유 색채 또한 이 공연에서 느낄 수 있어서 좋았고. 사실 서계동 국립극단은, 개관작부터 챙겨보면서 열심히 오간 공연장이었는데 갑작스럽게 작별 소식을 접한 뒤로 마음 한켠이 얼마나 허전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 공연을 통해서 제대로 추모한 기분이 들었다.
문득 추모라는 표현이 맞나, 싶어서 추모와 추도를 사전에서 찾아봤는데 맞네. 추도는 슬퍼하는 감정에 힘을 싣는 말이고 추모는 추억하고 기리는 단어란다. 그러면 추모가 맞지. 이 공연을 표현하면서 추모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말 그대로 서계동 국립극단이라는 멋진 공간을 추억하는 연출이 곳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광장에서, 아니 극장 출입구 격인 철문을 들어갈 때 시작해서 백성희장민호극장과 소극장 판, 그리고 사무동까지 국극 내 공간 전체를 다채롭게 활용해서 이곳이 지닌 의미들을 꼭꼭 씹어삼킬 수 있었기에.
사실 입장하자마자 청소년은 어디에도 없고 아이고 작가님 아이고 연출님 하는 계자파티인 걸 보고(뭐 매번 이런 상황을 접하며 짜게 식기 때문에 별로 새롭진 않다...ㅋㅋㅋㅋ) 청소년 없는 청소년극이 맞나 싶었다. 뒤이어 청소년극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깊생하는 시간을 10분 정도 가졌다. 그 결과, 청소년에 대해 얘기하고 있으면 청소년이 아니라 할머니들이 단관을 하더라도 청소년 극이 맞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보다 편하게 즐길 수 있었다. 우리 모두 한때는 청소년이었잖아요.
곳곳에 수많은 희곡들이 있었다. 전부 다 봤는지 모르겠다. 꽤 많이 봤다고 자부한다. 왜냐하면 최대한 공연을 느끼려고 노력했으니까. 헬멧을 쓰고서라도 갈 수 있는 곳은 다 가보려고 노력했고, 에어팟의 음성 파일은 다 들으려고 노력했다. 무전도 쳤고, 배추도 먹었고, 편지 답장도 남겼다. 러닝머신도 했고, 판 무대에 누워보기도 했다. 그렇게 여기저기를 쏘다니는 동안 뚜욜이 너무 마음이 쓰였다. 뚜욜이라고 기억하는데 검색하니까 뚜율이라고 해서 뭐가 맞는지 모르겠음. 욜이든 율이든 어쨌든 그 인형같은 귀여운 친구. 나는 네가 여기에 있다는 걸 알고 있어. 기억할게.
희곡들은 여러 번 반복되었다. 그리고 글로 적혀있기도 하고, 또 음성으로 들을 수 있기도 해서 어느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 쓰지 않아도 괜찮았다. 관람 중 시나브로 마음을 놓게 되는 편안함이 있었다. 어차피 짧은 이야기 조각들이라 다 보려고 하지 않아도 충분히 즐길 수 있었고. 프로그램 북 보니까 실존 희곡 몇 개를 쪼개놓은 거라는데, 장면장면 연결지을 필요 없이 단편적으로 봐도 흥미로웠다. 특히 물 속처럼 샤워장을 꾸며놓은 건 충격적으로 좋았음.
결말보다는 과정이 중요한 공연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 또한 공연의 일부라고 느껴졌다. 이걸 어떻게 자각했는고 하니, 처음에는 광장의 하늘색 구역이 무대같아서 내가 들어가면 안될 거 같았다. 나를 비롯한 모두가 그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바깥에 서있었다. 그런데 공연이 진행되자 차차 사람들이 안에 들어가는 걸 주저하지 않게 되더라. 나도 그렇고. 처음에는 사이가 날 똑바로 보며 말 거는 게 너무 어색했는데 나중에는 사이를 찾아다니게 되는 변화, 이런 게 참 재밌었다.
선선함을 느낄 수 있는 여름 밤에 봐서 더 좋았다. 기분 좋은 어느 날의 여름 밤으로 기억할 거 같다. "사이야 나 이것 좀 싸주라" 끝! 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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