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12일 오후 7시 30분 | 서울연극창작센터 서울씨어터 202

작 이경헌 | 연출 신명민

김여작 이대연 | 현성주 성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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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의 관극 후기를 남긴 이후로도 띄엄띄엄 공연은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기록이 없었던 것은, 공연에 대한 나의 애정이 점점 희미해져가는 영향이지 않겠는가 짐작했다. 하지만 감정 연습을 보고 나서, 그런 이유로 후기를 안 썼던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냥. 공연 보고도 할 말이 없었다. 사실 이렇게 된 지도 몇 년은 족히 되었지. 언젠가부터 공연에 대해 더이상 할 말이 없어졌고 후기는 의무처럼 느껴지곤 했다. 누가 후기를 강요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한번은 긴 글이 버거운가 싶어서 짧은 후기만 올리는 트위터 계정을 새로 만들었다. 하지만 글의 길이는 문제가 아니었다. 무슨 장면은 이래서 좋았고, 어떤 배우가 이런 연기를 해서 좋았다는 식의 문장을 두어줄 쓰고 나면 더는 할 말이 없었다. 뭐가 별로였는지 욕을 하는 것도 한두번이지. 이게 반복되면서 의미 없는 글자 나열을 생산하고 싶지 않아졌다.

 

하지만 오늘 감정 연습은 할 말이 쉴 새 없이 떠올랐다. 할 말이 너무 많아서 말 없이 입을 다물고 있어도 머릿속에서 흘러넘치는 기분이다. 오랜만에 돈과 시간이 아깝지 않은 공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이정도 관극 연차가 쌓이면, 공연을 정말로 보기도 전에 이게 취향일지 아닐지 정도는 판단할 수 있다. 특히 나는 굉장히 비좁고 공격적인 취향을 지녔기 때문에 더더욱. 그런 면에서 감정 연습은 내가 꽤 흥미롭게 볼만한 극이었다. 그래서 같은 날 같은 시간 다른 공연 초대 기회가 여러 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극을 굳이굳이 예매해서 보러 왔다. 그럼 정확히 그 이유가 뭔지 묻는다면 특별히 말 할 만한 건 없다. 자살 소재를 선호하는 것도 아니고 창작집단 LAS를 썩 좋아하지도 않는다. 공연 시간이 160분인 2인극라 군침이 싸악 돌았다만, 내용에 대해서는 크게 흥미를 끄는 구석은 글쎄올시다.

 

그러고보면 라스 공연을 본 것은 헤라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 초연 이후로 정말 오랜만이었다. 곱씹어보니 이후에 줄리엣과 줄리엣, 산책하는 침략자도 봤고 어디 무슨 처음 들어보는 공연장 지하에서 낭독극도 봤었던 거 보면(뭔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구구블로그쯤 뒤지면 후기가 나올텐데 찾기 귀찮아요) 정확히 어느 공연이 마지막이었는지는 기억이 다소 모호하군... 헤아아가 16년인데 줄앤줄이 18년이고 산침이 21년인데, 헤아아 보고 산울림소극장에서 치를 떨면서 지상으로 올라왔던 기억이 강렬해서 그게 마지막인가 했더니만 그 뒤로도 몇 개 보긴 한듯. 옛날 옛적에 성은이 망국하옵니다 시절 라스의 B급 느낌을 좋아했는데, 어느 시점부터는 방향성이 기대와 달라져서 전처럼 챙겨보지는 않게 되었다. 그런데 상황이 이렇게 되어버리니 서재 결혼시키기 못본 게 아쉽네. 서재가 다시 올라온다면+다음 공연 정도는 보려나.

 

다시 감정 연습 얘기로 돌아가서, 입장하자마자 무대에 보이는 보존서고 이동식 서가에 달린 회전식 손잡이가 너무 본격적이라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58분쯤 입장했기에 오래 지나지 않아 공연이 시작했고, 이윽고 서고 출입문에 디지털 도어락이 달려있어 두번째로 좋았다. 극 전반적으로 디테일이 미쳤음. 이 디지털 도어락이 생각보다 훨씬 더 중요한 장치였다. 처음에는 섬세하다 정도 인상이었는데 극이 진행될수록 디지털 도어락의 알람음이 없었다면 표현되지 않았을 미묘한 감정선이 있었기에 점점 더 감탄했다.

 

첫 장면에서 둘이 대사를 주고 받는데 너무나도 **연극적**이라서, 와 진짜 오랜만에 연극같은 연극을 보네 싶었다. 보통 정극 연기라고 칭하는 그것 말이다. 그래서 원래 이런 톤으로 가는걸까, 낯설지만 일단 두고 보자는 식으로 보고 있었는데 뒤로 갈수록 진짜 현실같은 일상 연기 톤으로 풀리는 게 느껴졌다. 단순히 이대연과 성태준이 배우로 무대에 존재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입이 풀렸다는 말이 아니고, 걍 지독하게 딱딱한 말투의 극적 표현이었던 거임. 둘의(특히 현성주 쪽이) 말투가 계속 바뀌면서 김선생과 현선생의 관계를 실시간으로 엿보는 맛이 있었다. 여작과 성주는 공연 내내 가까운듯 불편한 사이를 오간다. 독서동아리 담당자와 동아리원이라는 사무적인 관계였다가 어느 순간 긴장이 풀리면서 편안하게 대화하는 말투로 변화하면서 와닿는 거리감. 불편했다가 친해지는, 혹은 친했다가 불편해지는 일방통행이 아니라 한 번의 독서 모임에서도 냉탕과 온탕을 오가서 더욱 재미가 배가되는 듯했다.

 

공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김선생이 해원 얘기를 꺼내고, 이에 한껏 예민해진 현선생이 첫번째 도서로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제안하면서 차갑게 식어가는 티를 팍팍 내는 장면이 초반부터 극심할 정도로 강렬했다. 희곡으로 글자 하나하나 뜯어보면서 읽어보고 싶음. 희곡집 주세요.


현선생은 아니 현성주는, 그야말로 도서관의 보존서고 같은 인간이다. 보존서고라는 공간의 의미가 무엇인가. 보존서고는 도서관 안에 있지만 동시에 없기도 한 공간이다. 보통 도서관 이용자는 갈 일이 없다. 침전하는 책들의 무덤. 때때로 보존서고 자료 신청으로 끄집어 올려지는 책이 있지만 보통은 한번 보존서고에 들어가면 다시 나오기 쉽지 않다. 그렇다고 그곳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보이지 않는 저 아래 깊이 가라앉아있을뿐. 해원의 죽음으로 보존서고에 틀어박힌 현성주. 보존서고는 현선생을 상징하면서도 그 자체인 공간이다.

 

대체 현성주에게 송해원은 어떤 존재였을까? 무라카미 하루키의 남성 판타지를 비판하는 의견도 분명 해원의 것이었을 테지. 그 의견을 한국 남성인 현성주가 수용했다는 점에서 성주에게 해원이 어떤 의미인지 느껴져서, 그냥 지나가는듯한 대사였는데도 여기서 갑자기 저릿했다. 그러니 이 사람은 1년 전 그날로부터 단 하루도 지나지 않고 그대로 멈춰있고, 당연히 사람이랑 >>소오오오통<<하는 법도 잊고, 보존서고에 스스로를 가둔 사람이라는 거임. 아니 일단 해원을 해원씨나 해원이가 아니라 성해원이라고 부르는 것도 최선을 다해서 선긋는 거잖아 미친 놈아 너만 몰라 미친 새기야

 

김선생 얘기도 해야지. 현성주가 보존서고 그 자체라면 김여작은 [문에 지나치게 가까이 서있는 사람]이다. 그렇게 보존서고 문 코앞에 서있던 여작이었기때문에 현성주를 보존서고 밖으로 세상으로 꺼내주지만, 그렇다고 김여작이 좋은 인간인가 되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다. 그래서 오히려 이 관계와 서사가 빛났다. 여작이 더 매끄럽게 얘기를 꺼낼 좋은 방법이 있었을텐데 이 인간도 너무너무너무 미숙해서 아내를 죽였다느니 하는 식으로 말하고 그 결과 바보같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만다. 원래 사람 사이는 대판 크게 싸우기보다도 정말 사소한 오해로 갈라지는 게 더 흔하지 않던가. 진짜 너무 있을 법하잖아요. 난 김여작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서 좋았다. 일방적인 구원이었다면 상당히 시혜적으로 느껴져서 메스꺼웠을지도.

 

죽음을 앞둔 자와 죽음을 경험한 자, 미성숙한 이들의 연대. 여작은 그의 표현대로라면 아내를 죽여보았기때문에 성주 주변의 지독한 자책과 죽음의 냄새를 한눈에 알아챌 수 있었던 거지. 사실 지극히 당연하게도 여작의 기억에 그리 대단한 무언가는 없었다. 140분쯤 지나서 그동안 몰랐던 해원의 엄청나게 은밀한 비밀이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게 맥거핀이기만 한 건 아니고, 오히려 이 공연에서 가장 결정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앞서 말했듯 보존서고는 현성주가 스스로를 가둔 공간인데 마지막에 자기 손으로 문을 열고 나간 뒤에 아무도 없는 보존서고를 잠시동안 비추는 장면이 소를돋게 좋았다. 오후 6시가 지난지 얼마 되지 않았을 시간의 어스름한 노을빛, 책도 커피잔도 모든 게 그대로인데 성주만 나가서 없고, 문이 닫히면서 들려오는 도어락 소리가 나지막이 퍼지자 정말 끝이라고 말하는 거 같아서 그제야 안도했다.

 

갑작스럽지만 이 문단은 상당히 파멸적인 변태 발언인데, 난 내가 변태라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공연 내내 현성주 저새끼 개쓰레기네 라고 되뇌었던 지점들이 셀 수 없이 많았는데 그걸 연기하는 배우가 바른 이미지를 가진 성태준이라(자연인 성태준은 1도 모름. 그저 내 눈에 보이는 이미지가ㅇㅇ) 맛있었다. 게다가 160분 중에 두 시간 넘게 무례하기 짝이 없는 쏘시오패스였던 현성주가(맛있다) 풀썩 주저앉아서 앙앙 우는 게(너무 맛있다) 맛있었다. 참고로 괄호 안과 밖의 내용이 중복되지만 이는 오류가 아니고 두 번 언급이 맞다. 그리고 말기암 환자인 80대 할아버지한테 힘없이 멱살잡혀서 들어올려진 장면도 너무 맛있었다. 거세게 싸운다 정도로 충분히 표현할 수도 있었을텐데 굳이 멱살 잡아서 종이 인형처럼 팔랑대개 만든 게 이 연출은 분명히 맛잘알 변태가 분명하다.

 

와,, 다시금 곱씹어봐도 맛집이다. 변태라면 감정 연습 꼭 보세요. 

 

죽음에 대해 다뤘지만, 틈틈이 웃포가 있어서 균형이 좋았다. 종종 진지 빠는 극인데 어설프게 개그를 넣었다가 바사삭 식을 때 있는데, 감정 연습은 분위기 풀어주는 상황 자체도 위트 있었고 배우들도 치고 빠지는 연기를 균형있게 잘 해냄. 세상 어딘가에 정말 이런 사람이 있다고 느껴질 정도로 몹시도 현실적이었다. 그래서 멱살잡고 다시는 안 볼 것처럼 막말하고 상처줬다가 바로 다음 장면에서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장면이, 말이 안 되는 거 같으면서도 그럴 듯해서 맥이 탁 풀리면서 오히려 마음이 놓이더라. 집에 소장하는 책에도 청구기호 붙여놨다는 게 이게 말이 되나 싶게 도른 놈이었다가도, 어딘가 있을 법한 꽉막히고 미친 새끼.

 

이런 현실성과 다르게 이름은 둘 다 독특해서, 굳이굳이 이렇게 이름 지은 이유는 조금 궁금.

 

그리고 진짜 별 거 아닌데, 의문 얘기가 나와서. 여작이 서고를 박차고 나가고 나서 그리 시간이 오래 지나지 않아 다시 들어오는 장면이 있는데 중간에 암전이 왜 있었는지 궁금함. 처음에는 그만큼 시간이 오래 지났다는 건가? 생각했는데 여작이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갔다가 도중에 내려서 다시 돌아왔을 거 같지는 않아서, 그럼 길어봤자 20분 내외인데 암전을 넣은 이유가 특별히 있는지 궁금... (적으면서 생각할수록 진짜 몹시 사소하다)

 

마지막으로 서울연극창작센터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소리 지르고 싶을 정도로 공연장 너무 좋았다! 역시 쌔 거 최 고 정동극장, 어쩌면 추억 속의 남산예술센터 급의 깎아내리는 듯한 단차가 매우 훌륭했다. 급하게 예매하느라 9열 사이드가 최선이었는데 당연히 더 앞이면 좋았겠지만 9열도 공연 관람에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때때로 관심 공연이어도 공연장이 너무 별로면 선뜻 예매가 망설여질 때가 있는데 최소한 서울연극창작센터에서 올라오는 공연은 그럴 일은 없을듯. 커튼콜을 찍었다면 9열의 거리감을 남겨둘텐데 카메라를 챙기지 않아서 이건 조금 아쉽네. 공연장 위치 합격 단차 합격 화장실 합격 하우스 운영도 깰꼼

 

/// 비공식 독서동아리 활동 중 언급된 책들(왜 기억하는지 모르겠는데 어째서인지 기억나서 적어둠)

어떻게 죽을 것인가

달리기와 존재하기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헛간을 태우다

노르웨이의 숲

역사란 무엇인가

비는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것처럼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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